온라인게임

“스무 살이 되거나 아니면 167이 되거나.”

중학생이 되고 나서 어느 날, 딸이 언제부터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있느냐며 묻길래 저렇게 답했다. 167? 키가 167cm 정도가 되면 마음껏 온라인 게임을 해도 된다는 이야기다. 이게 무슨 관계가 있냐고? 관계가 있을 리 없다. 그냥 그 순간 생각난 숫자였다. 온라인 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에 딸이 묻길래 선심 쓰듯이 답한 것이다. 다행히 딸은 아빠의 엉터리 논리를 눈치채지 못했다. 전속력으로 키가 크고 있었으므로 167cm 정도는 금세 다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여름이 되고 가을을 넘어 겨울이 되었다. 한 달에 1cm 이상 자라다가 속도가 줄어들었다. 키가 자라는 속도에 의심이 생기자 딸은 견고한 숫자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도대체 게임과 키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엉터리 논리를 따지다가도 1cm 정도 깎아주면 안 되냐면서 강온책을 쓴다. 나는 그저 웃으면서 ‘스무 살’이라는 다른 방법이 있노라고 답했다. 그때까지는 까마득하다고 생각했는지 딸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날마다 키 크는 체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소아과에서 166cm가 됐다. 일주일 후 딸은 학교에서 사진 한 장을 내게 보냈다. ‘167.1’이라는 계기판 숫자를 찍은 사진이었다. 학교 보건실에서 찍은 ‘인증 샷’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일주일 만에 1.1cm 클 수 있느냐며 믿을 수 없노라고 하니, 딸은 매우 실망하면서 보건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엉터리 논리를 내세운 처지에 딸의 인증 사진을 검증할 자격은 내게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결국 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딸은 이제부터 부모 간섭 없이 자유로운 모바일 생활을 하게 된 것인데, 그러자 두 살 아래의 아들이 얼굴을 내민다.

“아빠, 나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게임중독인데 온라인 게임까지 하면 큰일 나지 하면서 그 흔한 부모의 생각으로 불허한 것이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졌다. 학교 홈페이지 시스템 문제로 우리가 온라인으로 신청한 무언가가 잘못 처리되었다. 잘못을 바로잡으니 다른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는 담임교사의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아들이 카톡으로 그 사실을 이미 친구한테 알려버린 것. 나는 아들에게 그 카톡 좀 보여 달라고 말했다. 아들이 자기 휴대폰을 가지러 가더니 카톡 대화를 지워버렸다. 갑자기 집안 분위기가 나빠졌다. 뭔가, 숨기는 게 틀림없다. 아빠가 보여 달라는데 어째서 지워버렸냐고 물으니, 대답을 못 한다. 그냥 지워버렸다고 말한다.

그때까지 나는 자식들의 휴대폰 안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불안감이 방 안에 자욱했다. 뭔가 나쁜 짓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달라고 말했다. 아들이 휴대폰을 준다. 그런데 열 수가 없다. 잠겨져 있다. 잠금해제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입술을 깨물면서 안 가르쳐준다. 몇 번을 말해도, 무섭게 말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혐의는 짙어졌다.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온갖 나쁜 상상이 일어났다. 미칠 것 같았다. 그래도 아들은 입술만 깨물고 있다.

아들이 휴대폰 잠금을 풀어주기까지 백 년이 걸린 것 같다. 휴대폰 안을 살펴보니 머리가 다시 하얘졌다. 아들 휴대폰을 열어서 여기저기 살펴봐도 너무나 평범한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의 휴대폰이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아들은 저항했을까? 사태가 잦아든 다음에 다시 아들을 조용히 불러 물어봤다.

“도대체 뭘 숨기고 싶었던 거야?”
“온라인 게임을 했어.”
그제야 아들이 답한다.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다.
온라인 게임이 나쁜 게 아니야. 친구들은 다 하잖니? 그냥 지켜주면 부모가 좋아하는 규칙이잖니. 그런데 뭔가를 부모에게 숨기는 건 안 돼. 거짓말은 위험한 거야.”
이렇게 말하고는 아들을 안아줬다. 조금 전까지 울었던 아들이 묻는다.
“아빠, 그러면 나도 온라인 게임을 해도 되는 거야?”

(월간에세이 2021년 8월호에 수록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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